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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꽃보다 남자의 돌풍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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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다하는 웰빙드라마들이 판판이 깨져나간 KBS 월화극을 살렸다. <에덴의 동쪽>이 턱밑까지 따라잡혔다. 화제성으로만 보면 이미 역전됐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수많은 시청자들을 분노케 한 MBC연기대상의 저주라고 하기도 한다. MBC연기대상의 후폭풍은 거의 사이버 민란 수준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시상식 결과를 알리는 기사에 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분이 풀리지 않은 사람들은 밤을 새가며 MBC를 성토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를 안 볼까? 천만에. 이는 시청자를 물로 보는 발상이다. 시청자는 화가 난다고 해서 볼 드라마를 안 보는 감정적인 존재가 아니다. 시청자는 화가 나건 말건 볼 건 보고 안 볼 건 안 본다.


그래서 ‘욕하면서 본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오직 재미뿐이다. 특히 요즘 TV에서 원하는 건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재미다. TV의 시청률은 전통적으로 이런 기준에 의해 결정됐지만 요즘은 점점 더 그런 세태가 강해지고 있다. 그 결과가 예능과 막장 드라마의 득세다. 조곤조곤 얘기하는 김제동이 퇴조하고 확 지르는 김구라가 득세하는 것은 그런 세태를 반영한다.


<꽃보다 남자>의 돌풍엔 이유가 있다.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동시에 양식 있는 사람들에겐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전형적인 막장 드라마의 행보다. 아무튼 분명한 건 <에덴을 동쪽>을 따라잡을 만한 재미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 재미의 내용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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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쾌하고 밝다


<꽃보다 남자>는 빠르다. 경쾌하다. 이건 중요한 미덕이다. 반면에 요즘 <에덴의 동쪽>은 처진다. <에덴의 동쪽>도 처음엔 이야기 전개가 빨랐다. 출생의 비밀이 본격화 된 이후부터 이야기가 질척질척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젊은 시청자들은 이탈한다.


또 <꽃보다 남자>는 밝다. 반면에 요즘 <에덴의 동쪽>은 칙칙하다. 어둡고 음울하다. 이것도 젊은 시청자들의 이탈 요인이다. 2008년에 복고바람이 맹위를 떨칠 때도 영화부문 복고만은 먹히지 않았다. <고고70>같은 영화의 내용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른 분야의 복고는 성공했는데 경쾌하고 밝다는 특징이 있었다. 영화부문에서도 경쾌한 <맘마미아>는 성공했다. <에덴의 동쪽>은 빠른 이야기 전개와 함께 근본적으로 성공담이란 성격이 있었다. 지지리 못 살던 두 형제가 한국 최고 계층으로 성공하는 이야기가 2008년의 내용이었다. 이런 얘기는 밝다.


2009년 들어 <에덴의 동쪽>은 어두운 싸이클로 진입했다. 주인공 동철이 더 이상 승승장구하지 못한다. 이러면 시청자들이 싫어한다. <꽃보다 남자>는 한없이 밝고 예쁘다. 원더걸스와 브라운 아이드 걸스로 이어지는 아이돌 복고의 밝음과 같다.


최근 <꽃보다 남자>에선 구혜선과 이민호의 관계가 ‘절정 - 오해, 위기 - 오해 풀림’으로 이어지는 3단계 구성이 한 회에 모두 그려졌다. 위기 후에 눈물과 방황으로 질질 끌지 않았다. 그만큼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밝다. 2009년 들어 칙칙하고 늘어지는 단계에 들어선 <에덴의 동쪽>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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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이틴도 막장 드라마를 기다렸다


<꽃보다 남자>는 하이틴을 위한 막장 드라마다. 구혜선을 질투하고 구박하는 여학생 3인조가 나오는 것을 보라. 그야말로 노골적인 설정이다. 예쁘지만 얄미운 한 명의 리더와 그를 따르는 두 명의 그림자가 주인공을 핍박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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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순정만화’ 코너에선 이를 풍자해 나쁜 여학생이 ‘똘마니’ 두 명이 그려진 그림을 지고 나타난다. 그럴 정도로 통속적인 설정인데 후안무치하게도 이 설정이 그대로 반복된다. 작심하고 막장으로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웰메이드고 뭐고 문화적 우아함 따위는 다 집어던진 ‘쌩얼’ 막장이다.


아줌마를 위한 막장 판타지가 그동안 위세를 떨쳤다. 아줌마가 구박 받다가 신데렐라로 변신해 왕자를 만난다는 설정이다. 이런 드라마들이 나올 때 젊은 사람들을 위해선 뭔가 개성 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준비됐다. 하이틴이 갈구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꽃보다 남자>는 하이틴을 위한 막장 판타지다. 이것이 하이틴의 갈증을 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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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인공의 매력


구혜선이 워낙 잘 한다. 물 만났다. 진작 이런 걸 하지 왜 사극에서 그동안 어울리지 않는 비련의 여주인공역을 하며 이미지만 구겼는지 모를 일이다. 만화같은 ‘오버’ 연기를 경쾌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그래서 극이 억지스럽지 않다.


나는 남자라는 생물학적인 한계로 인해 'F4'라는 네 명의 ‘멋진 남자들’에게 여자들이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선 영문을 잘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들은 여자들에게 먹힌 것 같다. F4는 아줌마 판타지인 <조강지처클럽>에서 오현경의 이혼 후 상대역이나 <아내의 유혹>에서 장서희의 새 상대역 남자처럼 여성의 환상을 노골적으로 형상화한 캐릭터다. 한 마디로 ‘왕자님’. 이리저리 돌리고 꼬는 것보다 이렇게 솔직담백하고 직설적으로 그려주는 것에 ‘총 맞은 것처럼’ 꽂히는 세태다.


송승헌이나 <에덴의 동쪽>에 잇따른 구설수 때문이 아니었다. <꽃보다 남자>의 자체발광이다. 돌풍엔 이유가 있었다. 역시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통속엔 통속으로. 막장엔 막장으로. 이이제이다. 통속극에 더 강한 막장 통속극으로 맞불을 놓으니 약발이 먹힌 모양새다. 그리하여 월화에 아줌마 통속극과 처녀 막장극의 쌍끌이 장세가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