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 영상 칼럼

선덕여왕, 덕만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인간적으로는 미실에게 애착이 간다. 미실 캐릭터가 더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다. 덕만에겐 카리스마도 없고, 미실보다 못 미더워보인다. 툭하면 꺅꺅 대면서 우는 모습도 마땅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만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건 둘이 신국의 지도자가 되겠다면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인간적인 매력이나 카리스마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이로운 리더십을 보여준 사람만이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미실에게 애착이 감에도 불구하고 덕만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이건 작품이 덕만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놨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미실에게 애착이 가도록 함으로서 드라마에 비극적 긴장감을 만들고, 한편으론 덕만에게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서 덕만의 승리가 정의의 실현이 되도록 한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덕만에게 부여된 정당성이란 어떤 것들이었을까?



- 소통 중시 리더십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신권위주의 시대라고도 불린다. 작년부터 회자된 주요 키워드들이 그런 인상을 갖게 했다. 강경진압, 원천봉쇄, 언론장악, 여론탄압, 소통 없는 사업 강행 등의 키워드들이 그렇다. 강력한 공권력이 지금 시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시대에 작품은 덕만을 소통 중시 리더십의 소유자로 만들어 그녀에게 정당성을 부여했다. 덕만은 어렸을 때 세계 문물이 교차하는 중국 서역의 실크로드 도시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그녀는 곳곳의 상인과 대화하고 토론하고 타협하며 소통의 문화를 익혀나간다. 같은 시기 미실은 다른 사람들을 힘으로 누르거나 혹은 죽이며 권력을 굳혀간다. 덕만에겐 귀와 입이 있었고, 미실에겐 위압적인 눈빛과 칼이 있었다.


<선덕여왕>은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고 말한다. 덕만과 미실은 모두 자신만의 스타일로 사람들을 규합해간다. 미실은 귀족의 특권이라는 이(利)로 사람들을 모은다. 반면에 덕만이 사람들을 얻는 코드는 기본적으로 의(義)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위험한 캐릭터인 비담의 경우엔 의가 아닌 정(情)이지만, 이건 특수한 경우다. 김유신의 경우엔 정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정을 끊어내고 의를 매개로 덕만의 사람이 된다.


그렇게 형성된 각각의 집단을 둘은 전혀 다른 리더십으로 이끈다. 미실의 집단은 철저한 상명하달식 위계질서를 따른다. 여기서 미실은 압도적인 지배자다. 반면에 덕만의 집단은 훨씬 수평적이다. 미실은 남을 힘으로 누르지만 덕만은 끊임없이 대화한다. 월천대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런 특징이 극명히 드러났다.


이런 차이는 백성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미실은 백성과 대화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배할 뿐이다. 미실은 지식을 독점하고 정보를 조작한다. 백성은 미실이 주는 안전과 밥에 만족하며 하루하루 살면 되는 존재다. 반면에 덕만은 실패를 겪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백성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려 한다. 그리고 백성들과 함께 꿈을 공유하려 한다. 그 꿈은 현재와는 다른 미래가 가능하다는 희망이다.


미실은 희망이란 없다고 단언한다. 덕만은 백성들과 희망을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덕만은 백성들을 무지로부터 깨우기 위해 지식을 공유한다. 천문정보를 백성들에게 공개한 것이다. 그것은 미실에게 정보조작의 원천이었다. 그것을 통해 미실은 백성들에게 두려움과 신비함을 느끼게 해 절대권력을 얻으려 했다. 덕만은 미실의 그 지식독점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런 구조를 부숨으로서 누구도 절대권력이 될 수 없도록 막는다. 그리고 남는 건 보다 개방적인 소통의 리더십이다.


  

- 민생중시 리더십 -


지도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민생을 챙기는 것이다. 소통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백성을 굶긴다면 제왕의 도리라 할 수 없다. 덕만은 중소귀족과 민초들의 민생을 챙긴다. 미실은 대귀족, 대지주의 이익을 중점적으로 챙기는 한편, 일반 백성들에겐 국가안보과 경제안정 정도를 제공한다. 미실 일파는 국가안보를 책임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외적에 맞서 싸운다. 미실은 신국을 지키고 안정을 유지한 것은 성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며 당당히 외친다. 그런 미실의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덕만의 민생이 민초들에게 더욱 이롭다. 미실이 밥을 준다면 덕만은 백성들에게 땅을 주려 한다. 모든 백성을 안정된 자산과 소득원을 가진 중산층으로 만들려 한 것이다. 반면에 미실은 배고픈 백성들에게 사재를 털어 쌀을 기부하는 정도다. 덕만은 백성들에게 강철 농기구라는 강력한 생산수단도 제공하며, 장기 저리융자라는 서민금융까지 지원한다. 미실은 대귀족의 쌀투기를 방조하지만, 덕만은 이에 철퇴를 가한다. 쌀투기로 자영농이 귀족의 노예로 전락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미실은 부자감세를 주장하지만, 덕만은 대귀족의 이익엔 관심이 없다. 가장 약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가야유민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미실은 그들을 삶터에서 냉혹하게 내치는 반면, 덕만은 그들을 포용하고 살 곳을 마련해 준다.


미실이 능력 있는 지도자이긴 하나 백성에게 냉혹하고 대귀족에게 따스한 반면, 덕만은 백성들에게 연민을 가진 온정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바로 이것이 덕만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실의 인간적인 매력이 아무리 커도 덕만의 정당성을 누를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