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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도대체 선덕여왕은 어디로 갔나

 

<선덕여왕>은 선덕여왕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당연히 선덕여왕이 가장 중요한 인물일 수밖에 없다. 그 선덕여왕의 파트너는 김유신이다. 그러므로 또다시 당연히, 김유신도 중요한 인물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 두 인물에게는 아역 때부터 많은 비중이 주어졌다. 비담의 아역은 회상씬에 잠깐 등장하는 것에 불과하고, 알천랑은 본인의 어린 시절은 물론 집안이나 각종 사적인 정보가 아예 제공되지 않는다.


역시 <선덕여왕>의 주인공은 선덕여왕과 김유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두 인물이 살아나길 끝까지 기다렸다. ‘왕이 되면 좀 달라지겠지’, ‘장군이 되면 좀 달라지겠지’.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이 끝까지 묻힌 채 <선덕여왕>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 덕만과 김소연의 눈물, 위력이 달랐다 -


덕만과 김유신 사이엔 아역 시절부터 각별한 인연이 그려졌다. 커서는 그것이 슬픈 사랑으로 발전했다. 드라마 중반부에 덕만은 김유신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아이리스>에서 이병헌에게 이루어질 수 없는 연정을 품었던 김소연은 그 눈빛을 통해 재발견 됐다. 덕만이 처한 상황도 김소연에 못지않게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덕만은 심지어 김유신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모습까지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덕만의 눈빛에선 김소연의 눈빛과 달리 아무런 존재감도 느낄 수 없었다.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강렬한 존재감을 발하는 사람을 일컬어 씬스틸러, 즉 화면을 훔치는 사람이라고 한다. 바로 김소연의 경우가 그랬다. 덕만의 경우엔 반대로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없었으니 가히 화면을 날려버린 캐릭터라 할 만하다. 김소연이 이병헌 때문에 눈물을 보일 때마다 폭발적인 반응이 일었으나, 덕만이 중반부에 김유신 때문에 애끓는 눈물을 흘릴 때는 드라마 몰입에 방해된다는 혹평뿐이었다.


덕만에겐 주연급이나 받을 수 있는 ‘출생의 비밀’도 주어졌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캐릭터는 드라마틱한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그런 호사가 주어지지 않는다. 덕만의 출생의 비밀은 결국 길러준 어미와 겨우 찾은 친언니가 비극적으로 최후를 맞는다는 대단히 강렬한 설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덕만은 이런 극적인 설정에서조차 부각되지 못했다. 길러준 어머니의 죽음 후에 부각됐던 건 소화역의 서영희가 연기를 잘했다는 칭찬이었고, 친언니의 죽음 후에 부각됐던 것도 역시 천명공주역의 박예진이 훌륭했다는 찬사였을 뿐이다. 박예진이 죽음을 맞을 때 그 비극을 지척에서 감당했던 덕만, 김유신 두 캐릭터는 몰입을 유도하기는커녕 시청자들에게 핀잔만 들었다.


이렇게 크게 성공한 작품 속에서, 이렇게 드라마틱한 설정의 주인공이 됐는데, 이렇게 존재감이 없을 수가 있을까? 정말 기적이다. 존재감이 기이할 만큼 없는 것도 기적이고, 주인공들의 존재감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작품은 성공했으니 그것도 기적이다. <아이리스>에서 이병헌이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면 그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 끝까지 보이지 않는 주인공들 -


초중반에 김유신 캐릭터의 무력함이 화제가 되자 <선덕여왕>측은 후반에 군신(軍神) 김유신의 면모가 등장하니 기대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끝까지 기다렸다. 중반에 김유신이 나름 각성하는 것 같아 기대가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김유신은 끝까지 하는 일이 없다. 낚인 느낌이다. 막판에 한 일이라곤 백제에 정탐 갔던 것과, 계백군의 홍의장군 곽재우식 전술을 깬 것밖에 없는데 이런 정도로 주인공의 존재감을 회복했다고 하기는 힘들다.


결국 미실 모자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북치고 장구치고 모두 책임지고 있다. 미실의 비극적인 권력욕과 비담의 비극적인 애정욕이 이 작품의 핵심적인 테마가 된 것이다. 덕만과 김유신은 미실 모자의 비극에 들러리를 선 정도의 느낌이다. 미실 모자는 씬을 훔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작품 전체를 가져가버렸다.


심지어 막판엔 로맨스의 주인공조차 김유신이 아닌 비담이 됐을 정도다. 김유신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핀잔을 들으면서까지 꺼억꺼억 울어대던 덕만은, 정작 김유신의 존재감이 강화될 거라 예고됐던 막판이 되자 갑자기 비담의 애정과 배신에 종속캐릭터가 됐다. 김유신은 여전히 병풍으로 남아야 했다.


물론 작품의 구도 자체가 미실과 비담을 드라마틱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 감이 있다. 아무리 그래도 주인공은 주인공이다. 선덕여왕과 김유신에게는 주인공으로서 충분히 많은 분량과 이야기들이 주어졌었다. 이요원과 엄태웅은 김소연처럼 씬을 훔칠 필요가 없었다. 주어진 분량만 충분히 표현했어도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과 김유신이 사라져버리는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끝까지 혹시나 하면서 기대를 놓지 않았던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대목이다. 그들이 만약 제 역할을 해줬다면 올 최고 성공작의 주역으로서 엄청난 찬사를 받았을 것이다. 물론 작품도 끝까지 힘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막판에 주인공이 보이지 않으니 작품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수많은 배우들에게 대성공작이었던 <선덕여왕>은 두 주인공에게만은 아쉬운 작품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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