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제작 돌풍이 몰아친다. 사전제작 작품들인 JTBC ‘품위 있는 그녀’, tvN ‘비밀의 숲’이 쌍끌이로 인기를 구가하는 것이다. 시청률은 10% 미만 한 자릿수이지만 지상파의 한 자릿수에 비할 바가 아니다. 둘 다 한국 드라마로서는 드문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줘 팬심이 뜨겁다. 주말 막장드라마 같은 치정극 소재의 ‘품위 있는 그녀’에 비해 수사물인 ‘비밀의 숲’은 불이 늦게 붙었다. 하지만 일단 불이 붙은 후엔 무섭게 타고 있다. 시청자들의 성원 속에 대본집이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최근 인기 있었던 수사장르물은 다양한 사건을 속도감 있게 해결하는 것으로 시청자에게 재미를 줬다. ‘터널’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에 ‘비밀의 숲’은 ‘서부지검 스폰서 브로커 사망 사건’이라는 단 하나의 사건에 천착한다. 그래서 요즘 수사장르물의 속도감에 비해 지루했다. 하지만 그 사건 하나를 쥐고 청와대 민정수석, 재벌, 방산비리까지 파고들어가는 깊이감이 속도감 이상의 파괴력을 만들어내며 ‘시간순삭(시간 순간 삭제. 시간이 삭제된 것처럼 방영 시간이 매우 짧게 느껴질 정도로 흥미진진함)’ 드라마 반열에 올랐다.
주인공 황시목 검사(조승우)는 뇌수술 부작용으로 감정을 잃어버렸다. 본인 감정은 물론 타인의 감정도 헤아리지 못한다. 일종의 사이코패스 같은 상태가 된 것이다.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욕망도 없다.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연줄이라서 봐주는 것도 없다. 봐주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 자체를 모른다. 사람보단 인공지능 로봇에 가깝다. 당연히 검찰조직 내에서 왕따다.
그런 황시목이 검찰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스폰서 브로커 사건을 맡는다. 황시목은 연수원에서 배운 대로, 검사직을 맡으며 선서한 대로 진실을 향해 달려간다. 동료가, 선배가, 또는 자기 출세길을 좌지우지할 권력자가 수사선상에 나타나도 추호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의 칼날은 점점 한국 사회 핵심부를 향하게 된다.
작가는 황시목을 형상화하며 ‘욕망하지 않는 자는 지배할 수 없다’는 말을 떠올렸다고 한다. 돈을 원하는 사람에겐 돈을, 힘을 원하는 사람에겐 힘을 쥐어주는 것이 권력이 젊은 엘리트를 포섭하는 방법이다. 아무 것도 욕망하지 않는 사람에겐 그 방법이 작동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감정이 없는 사람은 공포도 없다. 협박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욕망을 배제하기 위해 아예 감정을 없애버렸다. 그 결과 가장 검사다운 검사가 탄생했다.
‘뷰티풀 마인드’에선 장혁이 사이코패스 의사 이영오로 나왔다. 이영오도 마치 로봇 같은 캐릭터여서 주변인이나 환자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손가락질을 받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배운 대로만 일했다. 의사의 본분은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 그 어떤 유혹이나 압박에도 오로지 눈앞의 환자를 살리는 데에만 집중하는 의사다운 의사.
한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병원조차 외인사와 병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며 빈축을 샀다. 이럴 땐 차라리 아무 감정 없이 자기 일만 정확히 하는 사이코패스가 가장 ‘뷰티플 마인드’라고 작품은 말했다. ‘비밀의 숲’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사이코패스 검찰이면 좋겠다고 말이다. 불신의 시대가 잉태한 판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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