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는 송강호가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신나게 흥얼거리는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어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같은 느낌이다. 행복하고 자유롭고 풍요로운 세상인 것이다.
‘단말머리’는 트로트, 발라드, 그룹사운드, 포크 등이 유행하던 당시 눈에 띄게 경쾌한 곡이었다. 그 경쾌함이 민주주의와 국민의 생명이 짓밟히는 상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송강호는 대한민국의 심층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른 채 ‘번영하는 자유대한’의 단 꿈에 젖어 사는 평범한 소시민 택시기사 역할이다.
조용필은 평소 자신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택시운전사’의 줄거리와 송강호에 대한 믿음으로 곡 사용을 허락했다고 한다. 사실 과거 조용필의 ‘생명’은 ‘광주 학살에 대한 분노’와 추모의 뜻을 담은 곡이었다. 그런 정서가 있으니만큼 ‘택시운전사’의 내용에도 더욱 공감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 평범한 소시민 택시기사가 독일인 기자를 태우고 광주에 가면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가 묘사하는 광주의 현실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조금 순화된 형태다. 광주 시민이 겪은 참혹한 고통이 완화된 형태로 그려진다는 말이다.
수위를 낮춘 묘사조차도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엄청난 일이 벌어진 그곳에서 사람들은 역사에 남을 위대한 행동들을 했다. 주인공을 비롯해 현지의 택시운전사들, 대학생 등이 모두 그랬다. 그들이 대단한 투사여서가 아니다. 그저 상식을, 인륜을 거스르는 상황에 맞서 인지상정에 입각한 행동을 했을 뿐이다. 그것이 위대한 역사적 순간을 만들었다.
외국인 기자도 마찬가지다. 극 중에서 그는 자신이 기자가 된 것이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그랬던 사람이 직업상 당연한 일을 하려 큰 사건이 벌어졌다는 광주에 갔고, 거기에서 벌어진 사건을 목격하고는 그 사태를 반드시 외부에 알리겠다는 숭고한 사명감을 갖게 됐다.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선택한 비범한 결단. ‘택시운전사’는 주인공들의 그런 모습을 통해 현재의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우리도 비범한 행동으로 역사를 만들 수 있다고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숨죽이지 않고 행동에 나서야 올바른 역사가 이룩된다고 말이다.
언론의 기능도 성찰하게 한다. 영화는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그리 많은 묘사를 하지 않지만 언론 문제는 중요하게 다룬다. 진실을 숨기고 왜곡하는 언론, 그로 인해 불타는 방송사, 외국인 기자를 환영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바로 그런 언론 보도 때문에 주인공은 권력찬탈이 벌어지는 상황인데도 태평성대인 줄만 알고 태연하게 ‘단발머리’를 흥얼거렸다. 지난 정부 때 박근혜 대통령을 칭송하던 우리 언론의 모습은 그때와 달랐을까?
많은 언론이 세월호 사건 당일 대통령 행적에 대한 석연찮은 청와대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날의 대통령 행적에 문제제기를 하면 불순한 의도의 정치공세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이런 행태가 국정농단의 토양이 됐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해야 한다고 ‘택시운전사’는 말한다.
‘택시운전사’에서 진실을 보도하려는 기자를 도와준 운전사에게 신군부의 하수인은 ‘빨갱이’라고 한다. 이것은 최근 이재용 부회장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박근혜 전대통령이 JTBC를 이적단체라고 했다는 증언이다. 이적단체는 우리 현실에서 ‘빨갱이’라는 뜻이다. 권력이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을 보는 시각이 ‘택시운전사’ 시절부터 아직까지 이어지는 것일까? 이러니 평범한 사람들과 언론의 각성을 담은 영화의 메시지에 울림이 크다.
영화 자체는 작품적으로 아주 잘 만들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흘러가고 우리 역사가 주는 각별한 감동이 있다. 이 점은 ‘군함도’와 비슷하다. 약 1500여 개의 스크린으로 스크린을 독점한 것도 비슷하다. ‘택시운전사’와 ‘군함도’의 개봉시점이 뒤바뀌었다면 ‘택시운전사’의 스크린 수가 훨씬 늘고 ‘군함도’의 스크린 수가 줄었을 것이다. ‘택시운전사’가 ‘군함도’와 다른 건 피해자를 악하게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관객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감동을 극대화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아직까지도 가해자의 분명한 잘못 인정과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근엔 인터넷에서 광주 피해자를 조롱하는 흐름까지 나타났다. 아직도 북한군 사주에 의한 폭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총선 땐 말끝마다 호남을 내세우며 광주의 희생으로 형성된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도 나타났다. 광주정신에 대한 모욕이 이어지는 것이다. 바로 그래서 ‘택시운전사’의 의미가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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