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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하지원 여우주연상이 공정한가?

 

청룡영화상이 치러졌다. 대체로 이변이 없었고, 공정한 시상이었다는 평가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하지원이 후보에서조차 배제당하고, 더 나아가 <신기전>에게 작품상을 안긴 대종상에 비한다면 이번 청룡영화상이 그나마 양반이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공정했다, 받을 사람들이 받았다라고 하기는 조금 힘들다. 하지원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하지원이 후보에서조차 배제당했던 것도 황당했었지만, 그녀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건 그것보다 더 황당했다.


왜냐하면 여우주연상 후보에 <마더>의 김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김혜자가 받았어야 했다. 모양새가 그랬다.


김혜자 정도의 베테랑 중견배우들이 대한민국에서 연기를 제일 잘 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연기를 할 때마다 상을 준다면 매년 시상식은 중견배우들만의 잔치가 돼서 우스워질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언제나 시상하기는 힘든데, 하지만 언젠가 상이 주어져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모양새가 중요하다. 딱 그들이 상을 받을 만한 모양새가 형성됐을 때 시상해야 한다. 그때를 놓치면 언제 또 그런 시기가 올지 모른다.


김혜자 정도 연령대의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건 주인공의 어머니 역할 아니면, 시어머니 역할뿐이다. 대체로 드라마에선 아들의 결혼에 반대하며 며느리를 구박하는 천편일률적인 캐릭터를 소화한다. 이들이 주역에 나설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번에 김혜자는 모처럼 <마더>라는 작품으로 화제작의 중심에 서는 기회를 맞았다. 바로 이런 모양새가 형성됐을 때 김혜자 같은 고령의 연기장인에게 시상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우주연상은 하지원에게 갔다. 하지원이 연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배우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배우로서의 카리스마로 따졌을 때 김혜자에게 밀리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지원에게 간 여우주연상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대종상에서 하지원이 후보에조차 들지 못해 일어났던 논란에 대한 보상의 차원에서 시상하는 것 같았다. 청룡영화상이 자신들은 대종상과는 다르다며 우월성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구도를 마냥 웃으면서 봐주기는 힘들었다.


<똥파리>에게 감독상이나 신인감독상이 안 간 것도 어색했다. 이번 청룡영화상은 <똥파리>에게 신인연기상을 준 대신에 신인감독상과 감독상은 <과속스캔들>과 <국가대표>에게 각각 안겼다. <과속스캔들>은 감독상을 받을 만큼 잘 만들었거나 예술적 성취가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없고, <국가대표>는 후반부의 완성도도 훌륭하고 작품의 임팩트도 강렬하나 전반부에 어색한 점이 있어 감독상에 썩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하기 힘들었다.


뭔가 상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수선하게 배분된 느낌이다. 이걸 두고 매체들은 상들이 고르게 분배돼서 공정하다고 보도했는데, 상을 고르게 분배하는 게 시상식의 목표란 말인가? 대종상보다는 나았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시상식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산뜻한 대중문화 시상식을 보는 건 언제쯤일까?



- 박진영, 쇼를 구원하다 -


이번 청룡영화상에서 돋보였던 건 박진영이었다. 우리나라 영화시상식의 중간 쇼는 썰렁하기로 악명이 높다. 배우들이 냉랭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드넓은, 그래서 더욱 썰렁한 무대 위에서 가수들이 안쓰럽게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이 영화시상식의 중간 쇼였던 것이다.


바로 지난 번 대종상에서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무대가 그런 썰렁함으로 특히 유명했다. 이런 썰렁함은 대체로 아이돌들이 무대를 꾸몄을 때 극에 달하는 경향이 있다. 장년층이 주류인 영화배우들과 아이돌의 코드가 맞지 않기 때문일까?


이번에 청룡영화상 중간쇼에 2PM이 등장했을 때 그런 과거가 재현되는 것 같아 순간 불안했다. 관중석 배우들의 표정이 지난 대종상 때보다는 훨씬 밝아보였지만 전체적인 썰렁함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를 한 방에 역전시킨 것이 뒤이어 등장한 박진영이다. 그는 관중석과 사회자석을 노련하게 누비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엔터테이너로서의 능력이 과시된 순간이었다. 언제나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들었던 정준호의 만담이 사라지고 이범수의 진솔한 진행으로 한결 나아보였던 것과 함께 박진영이 쇼를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