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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개콘 도움상회 욕먹는게 당연하다


모처럼 훈훈한 소식이 전해졌다. <개그콘서트> ‘도움상회’가 시청자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도움상회’가 이번에 저지른 짓은 ‘정치적 범죄‘다. 시청자들이 예리하게 문제지점을 잡아냈다. 정의는 살아있었다.


'도움상회'가 어쭙잖게 정치풍자를 시도한 것이 화근이었다. 정치는 '시민'의 영역이다. 시민은 당연히 '성인'이다. 여기서 성인이라 함은 물리적 성인이 아니라 정신적 성숙함을 뜻한다. 시민은 공화국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과 책임감, 판단력을 갖춘 자다. 그런 시민들의 사회행위가 바로 정치다. 이런 바닥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유아 상태에서는 벗어났어야 했다.


하지만 '도움상회'는 유아 수준인 상태로 과감하게 정치풍자에 나섰다. 이건 좋게 봐줘서 만용이고, 정확히 평가하자면 '나쁜 짓'이었다. 즉,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행위였다.


'도움상회' 하나만 특별하게 그런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정치풍자 수준이 대체로 다 이랬다. '도움상회'가 이번에 선보인 것은 '양비론'이다. 싸움질을 일삼는 국회의원들이 싫다는 것이다. 해머와 소화기 분말을 배치하며 이번 국회대립사태를 야유했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을 질타했다. 익숙한 정치풍자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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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비론에 입각해 정치를 비판하는 건 군사독재 시절부터 보수언론의 전매특허였다. 군사독재정권과 제휴관계였던 보수언론이 양비론으로 정치를 비판했던 건, 양비론이 그 만큼 ‘이중대’적 관점이었기 때문이다. 비판하는 흉내는 내야 하지만 진짜로 비판할 생각은 없을 때, 혹은 여당편을 들고 싶지만 노골적으로 그러기는 힘들 때, 그러면서 언론의 체면은 차리고 싶을 때 꺼내드는 전가의 보도가 바로 '양비론'이었다.


양비론적 관점에 입각한 비판을 우리가 자주 들을 수 있는 장소는 유치원이다. 유치원에서 아기들끼리 다투면 선생님이 그런다. '자자 싸우지들 말고 사이좋게 놀아야지~'


아기 수준에서야 무슨 나쁜 짓이 있겠는가? 아기들은 서로 양보해서 사이좋게 지내면 그게 좋은 거다.


공화국의 정치는 다르다. 특히 한국의 정치는 첨예하다. 서구 선진국같은 경우는 보수파와 진보파, 혹은 우파와 좌파의 대립이 한국처럼 격렬하지 않다. 우리처럼 그 차이가 크지도 않다. 서유럽 선진국의 좌우당은 한국적 관점에서 보면 모두 '빨갱이'들이다. 우파가 집권했다고 떠들어대는 스웨덴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엄청난 규모의 세금폭탄을 국민에게 안기며 사회주의적 분배정책을 실행한다. 이런 곳의 정치적 대립은 한국과 비할 바가 아니다.


한국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김대중-노무현 그리고 이명박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정치적 대립 속에 있다. 국회에서 자기들 재산 가지고 다투는 것이 아니다. 공화국의 운영방향을 놓고 멱살을 잡고 뼈가 부러져가며 투쟁하고 있다. 이건 저강도 전쟁이다. 싸우는 게 정상이고 안 싸우는 게 비정상이다.


그런 현실을 은폐하거나 호도하는 방법이 양비론으로 대립의 이유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힘을 가진 측은 계속 해서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다. 약한 쪽이 의견을 관철시키는 방법은 싸우는 것뿐이다. 싸우지 않으면 강자가 언제나 100%를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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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싸움이 발생했을 때 보수언론과 관변인사들은 점잖게 양비론을 펼치며 개입한다. 싸우지 말라며 한국의 정치수준을 개탄한다. 그것은 기실 약자에게 저항하지 말고 무조건 굴종하라는 협박에 불과하다. 또 국민을 시비분간 못하는 정치적 백치로 만들려는 책략이다.


여기에 철없는 대중문화인들이 끼어든다. 그들은 정치인을 싸잡아 욕하기만 하면 뭔가 수준 높은 풍자라고 오해한다. 그래서 당당하게 유치원 수준의 옹알이를 비판이라고 내놓는다. 결국 사회의 보수화에 기여한다. 보수언론은 이런 수준의 비판을 환영한다. 그래서 한국에선 이런 유치원 수준의 막말이 '비판'이라는 대접을 받아왔다. '엄마, 저 아저씨들은 왜 맨날 싸워?' 딱 이런 수준.


하지만 이번엔 시청자들이 분연히 일어나 '도움상회'를 질타했다. 한국인의 정치-문화적 판단력이 드디어 유치원 수준을 벗어난 쾌거다. 시청자들은 '시비'를 가리지 않은 무조건적 비판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야말로 진정한 '시민'의 통찰력이다.


시민은 시비선악을 구분해야 한다. 구분할 수 없다면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라고 공교육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능력이 없다면 원칙적으론 시민으로서 참정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 그런 무지의 상태에서 정치비판을 해서도 안 된다. 방송이 그런 정치비판으로 국민을 무지의 상태로 이끄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도움상회’는 방송민영화 등을 추진하는 측의 편을 들며 그것에 물리적으로 저항하는 정치세력을 파렴치한으로 내몬 셈이다. 또 국가의 중차대한 사안으로 대립하는 것을 비웃으며 정치적 냉소를 부추겨 조국을 후진화하고 국민을 우민화했다. 정치적 범죄다. 모르고 그랬더라도 죄악이다. 알고 그랬다면 더욱 사악한 죄악이다. 그 경우 퇴출운동을 벌여야 할 사안이다. 나는 다만 ‘무지한 죄’라고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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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개그도 유치원 수준을 벗어나서 시민의 개그로 성숙해야 할 때다. '드림 오브 칠드런' DJ DOC를 보라.  DJ DOC도 과거에 '삐걱삐걱'이라는 노래에서 딱 유치원 수준의 정치비판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콘서트에서는 가사를 바꿔 정확히 한나라당을 문제삼으며 MBC파업을 지지했다. 유아 수준의 양비론에서 벗어나 '드림 오브 칠드런'이 성장한 것이다. '드림 오브 칠드런'이 성장할 때 개그맨은 뭐 했나? '도움상회'가 개그맨들은 1980년대 이래 변한 것이 없다고 개그맨 망신을 시켰다.


시청자들이 이점을 예리하게 느껴 '도움상회'를 질타하고 나섰다. '도움상회'는 언제나 해오던 대로 했는데 왜 욕을 먹느냐며 억울하게 느낄 수도 있다. 억울할 일이 아니다. 한국 시민사회가 성장할 때 그 성장을 따라오지 못한 것이 패착이다. 이제라도 성장해야 한다. 이번 양비론 질타사태는 성인의 개그, 시민의 개그, 정치적으로 올바른 개그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아무 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비판해 드립니다. 싸움만 나면 무조건 싸잡아 비판해드리는 묻지마 비판 서비스. 19,900원에 모십니다.' 이런 식의 싸구려 정치풍자는 이제 그만.